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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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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문경시민 여러분!
5분 자유발언의 기회를 주신 이정걸 의장님과 동료 의원님!
그리고 시정에 여념이 없는 신현국 시장님과 1천여 공직자 여러분!
어느덪 한 해의 마지막 달입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 열심히 앞만보고 달려오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문경시 가 지역구 김경환 의원입니다.
지난 10월 26일 청운각에서는 제45주기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추모식이었지만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참석했던 분들이 모두 50대 이상의 장년층과 노년층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37년부터 3년간 문경초등학교의 교사로 재직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박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것은 그 분과 문경과의 개인적인 인연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 분이 우리나라에 끼친 업적이 너무나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세대와의 근대 역사인식에 대한 세대 간 단절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에 본 의원은 청운각 주변의 특정 구간을 그 분의 업적을 기리고, 젊은 세대가 우리나라의 발전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교육 공간으로서 박정희 거리를 조성하자는 제안을 드립니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 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당시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 170달러, 태국 220달러이었을 때 한국의 국민소득은 76달러이었습니다. 당시 유엔에 등록된 세계 120개국 중 아프리카의 가나, 마다가스카르 보다 못사는 세계 최빈국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민족자본이 형성된 것도 없었고, 어떤 나라도 이 가난하고 작은 나라에 돈을 빌려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였고, 월남전 참전,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을 종잣돈으로 하여, 이후 4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포항제철 건설을 시작으로 경부고속도로, 소양감 댐을 건설하였고,
울산석유화학공단, 여수 석유화학공단, 창원기계공단, 울산조선·자동차공단,
온산비철금속공단, 거제조선공단,
구미전자공단 등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석유 정제산업에서 세계 5위를 점하고 있으며, 전자, 철강, 자동차, 조선 등 중화학산업이 세계에서 선두에 서게 된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한 수출 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매진한 것은 우리나라의 명운을 결정짓는 큰 획이 되었습니다. 1962년 5,400만 달러 남짓하던 수출액은 2023년 현재 6천300억 달러의 수출을 기록함으로써 세계 6위의 수출대국임과 아울러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북한과 대치상태 하에서의 부국강병 정책은 최근 K-팝, K-드라마, K-푸드에 이어
K-방산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으며, 6.25 전쟁 당시 변변한 무기 하나 없었던 나라가 2027년에는 세계 4대 무기 수출국이 된다는 전망입니다.
새마을 운동은 단순히 주거 환경 개선의 차원을 넘어, 민족의 정신을 새롭게 하는 정신 운동으로 승화되었고, 지금도 세계의 수많은 국가에서 이를 배우고 적용하여 국가 근대화의 롤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과 대덕연구단지, 기업형 전문 연구소의 설치를 독려하여 과학입국의 기틀을 다졌으며, 기술 인력의 양성으로 국제 기능올림픽을 제패함으로써 농업국가에서 기술국가로 나라의 근간을 바꾸어 나갔습니다.
또한 중동 특수를 활용하여 외화 획득과 외교의 다변화를 이룩하였으며, 4대 강에 다목적 댐을 건설하고,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여 에너지의 자력 충당을 이룩하였습니다. 치산 녹화 사업으로 벌거벗은 국토를 푸르게 가꾸었으며, 영농의 과학화를 통해 식량의 자급자족을 이루었고, 서울에는 지하철 시대를 여는 등 실로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끝이 없습니다.
혹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억압했다고 비판합니다. 실제로 빈손에서 경제대국을 일구어내는 과정에서 순탄하지 않은 부분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도 “민주화란 산업화가 끝나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했듯이,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은 광범위한 중산층의 형성과 확대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합니다. 국민의 대다수가 가난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란 부패한 정치의 장식품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 역시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경제적 부흥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그 분에게 빚을 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1440년대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과 민족문화의 정기를 창달한 성군으로 기록되었듯이, 현재의 정치적 이념 논쟁이 끝나고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 먼 훗날의 역사가들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을 후세에 물려주지 않겠다는 오직 하나의 일념으로 우리나라가 5천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전기를 마련한 대통령으로 기록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문경시 역시 청운각에서 그분의 공적을 기리며 매년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는데, 본 의원은 그 연장선상에서 도로명주소법에 따른 명예도로 개설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짧은 기간에 후진국에서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발전과정을 시대별 콘텐츠나 조형물, 벽화 등에 담아 박정희 거리를 조성하는 것은 그 분에 대한 가장 뜻깊은 추모이자 미래세대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며, 우리 모두의 지난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생생한 역사 현장인 것입니다.
아울러 문경새재를 찾는 관광객들 중 아직도 박정희 향수에 젖어있는 많은 분들이 청운각을 방문했을 때, 그 위업에 걸맞지 않은 소박함에 실망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의원은 문경새재의 자연생태 및 문화관광과 연계하여 역사관광지로서도 손색없는 박정희 거리 조성이 꼭 필요함을 거듭 강조하면서 5분 자유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