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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오피니언

오천리, 풍년화(豊年花)의 슬픈 기다림......

문경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5.06.26 13:32 수정 2025.06.26 01:32

New문경 연구소 /소장 김문한(文植)

가네꼬 후미코(일본국)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배우자 박 열 출 생 1903년 1월 25일 사 망 1926년 7월 23일 (향년 23세) 묘 지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 44 (박열의사기념관 경내) 서 훈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문경시민신문
일본제국주의 천황제를 반대하고 조선의 독립운동에 일생을 몸 바친 조선의 독립운동가 · 조선의 마지막 아나키스트 박열(朴烈)의 부인이며 사상적 동지이다. 2003년 봄 77년 만에 문경읍 팔령리 산 58-1번지에서 찾은 그녀의 무덤은 박열 의사의 후손들과 그의 사상을 추모하는 지인들의 힘으로 마성면 오천리 44번지 선영 아래로 이장 되었다. 그녀는 죽기 전 평소 박열 의사에게 들은 조선의 고향 땅 생가 뒷동산에 풍년화 한 그루와 함께 묻히길 소원한 유언에 따라 여사가 태어나 유년기를 지냈던 일본국 가네꼬 후미코의 고향 뒷동산에 이른 봄 흐드러지게 피는 꽃으로 슬픈 기다림을 상징하는 꽃말을 가진 (1)풍년화 한그루가 이듬해 그가 싸늘한 주검으로 건너왔던 그 현해탄(玄海灘)을 그때와 같이 건너와 그리던 묘소 앞에 심어졌다. 그녀 역시 유년 시절 조선 땅으로 와 불우한 환경에서 3·1운동을 경험하고 도쿄로 돌아가 20세에 박열 의사를 만나 무국적 주의자(아나키스트)를 자처하여 일본제국주의 천황제를 부정하며 박열 의사와 함께 한인 15명, 일본인 6명이 항일단체인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여 기관지를 발행하며 조선의 독립운동 활동을 했다. 그 와중에 조선인의 항일단체인 의열단과 함께 일왕 폭살용 폭탄반입을 모의 했다는 대역죄를 씌워서 박열 의사와 동반 검거되어 투옥 후 옥중 결혼을 하였지만 4개월 만에 불꽃 같은 생을 살다가 간 가네꼬 후미코(朴文子) 여사! 그녀와 의사께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옥중투쟁을 하며 조선의 독립과 제국주의 천황제 타도를 조롱하고 투쟁한 내용의 당시 일본과 조선의 신문 기사는 나라 잃은 조선인들에게는 정신적 위로요!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세상에 알리고 애국심을 심어 주는데 충분했을 것이고, 일본 정부와 일본인들에게는 큰 일깨움이고 타격을 입히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외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일본인 가네꼬 후미코 여사! 그의 소원은 슬픈 기다림의 꽃 풍년화(豊年花)의 꽃말처럼 짧은 인생을 불꽃같이 살다 갔지만 죽어서는 박열 의사와 나란히 눕고자 하지 않았을까? 한 세기가 되어가는데 지금까지 죽어서도 함께하지 못하는 분단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저리다 못해 뼈 아픈 현실이다. 박열의사기념사업회는 북에 있는 박열 의사의 유해 송환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며 아주 독특한 당시 피탈 당한 가난한 조선이란 국가를 사랑하고, 피탈국 출신의 미래까지 암울한 한 남자를 사랑한 두 분의 아주 이례적인 독립운동의 사실과 그들이 나눈 사랑을 널리 알려 그의 한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전 국민이 당시 소설 같은 이야기 속 주인공 같은 슬픔 속 아름다운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가도록 역사의 현장을 길이 잘 보전하여 승화 시켜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제 곧 7월이 오면 99번째 아나꼬 후미코 여사의 기일(忌日)을 맞아 아직도 슬프고 외로운 기다림은 진행형인 그의 숭고한 생을 애도하고 아름답고 고마운 그의 정신을 영원히 기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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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 년 화 계 : 식물계 목 : 범의귀목 과 : 조록나무과 속 : 풍년화속 종 : 풍년화 * 이른 봄 개나리보다 먼저 꽃 피우는 관목으로 일본, 중국 등지에 널리 분포하며 정원수로 사랑받는 수목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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