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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오피니언

의병창의의 성지에 대한 유감

문경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6.27 08:25 수정 2023.06.28 08:25

글 - 김병중

ⓒ 문경시민신문
매년 6.1일은 의병의 날이다. 이 날은 의병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할 수 있는 대한민국 기념일로, 2010년부터 제정 시행해 오고 있다. 그런데 기념일이 왜 6월1일인가 궁금해진다. 1592년 홍의장군 곽재우가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의병의 효시가 됐던 4.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호국보훈의 달의 첫째 날로 정한 것이다. 외세의 침략을 백성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항쟁한 정신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기념일 제정을 통해 국민통합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문경은 우리나라 의병도시 중의 하나다. 그만큼 애국정신으로 충일한 백성들이 많았으니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 구하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충절의 고장이다. 전국의 의병 유공자의 수는 2,596명으로, 경북 출신이 18%나 된다. 그중 문경 출신 의병이 51명으로 전국 시군 중 3번째로 많기에 문경을 애국의 도시라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문경에선 운강 이강년 의병장 순국 110주년을 맞아 2018년 ‘제8회 대한민국 의병의 날 기념식’을 전국 규모로 개최한 바 있다. 지난 날 백성들이 궐기하여 나라를 지키고 구했듯이 이젠 우리 미래는 우리 손으로 열어가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그날이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누구나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구국정신과 희생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문경 지방에서 의병을 일으킨 사건을 연대기 순으로 보면 도암 신태식 의병장과 운강 이강년 의병장 순으로 꼽을 수 있다. 먼저 도암 의병장은 1895.10.10. 을미의병이 유성에서 발발, 전국적으로 번지자, 1895.12.30 농암장터에서 일제의 밀정으로 활동한 혐의가 있는 반역자 2명을 처단한다. 가은의 김골패와 상주의 강용이를 효수한 뒤 기회를 엿보다가 1907년 정미의병이 봉기하자 동년 9월10일 문경과 단양 등지에서 의병 수백 명을 모아 도대장에 취임하고, 문경으로 이동해 운강 의진에 합류, 갈평에서 전투를 벌였다. 도암이 반역자를 처단한 뒤 두 달 정도가 지날 무렵 제천에서 유인석(柳麟錫)을 주축으로 제천의병이 결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운강은 이에 자극받아 1896.2.23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킨다. 이때 안동 의병을 피해 도망하던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을 비롯해 순검 이호윤(李浩允), 김인담(金仁覃)을 생포해 호송한 다음 군중이 모인 농암(籠巖)장터에서 효수하여 기세를 높이며 출병을 꾀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왜 하필이면 농암장터를 반역자 처단 장소로 택했는가? 왜 의병 출정시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자르는 의식을 가졌느냐?’는 점이다. 첫 번째의 답은 두 분의 의병장이 두 달 시차를 두고 같은 농암장터에서 목을 자른 그곳이 특별한 장소라는 점이다. 그곳은 일명 개바우라 부르고,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영험하고 서기가 내린 곳이기 때문이다. 개바우는 누운 개처럼 보이는 까맣고 작은 바위에 불과하지만, 전설에 의하면 성재산의 사자(사자바우)와 우복산의 범(범바우)이 개 한 마리(개바우)를 중간에 두고 탐하면서도 서로 개를 취할 수 없는 지형이다. 다시 말해서 이곳은 삼한시대 소도(蘇塗)처럼 신성한 곳으로 죄인이 이곳을 들어가도 잡을 수 없는 성지같은 서기가 어린 곳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과 625전쟁 등 국난이 다가올 때마다 개바우의 개는 경고의 의미로 미리 울어서 깨우침을 준다고 하니 의병장들이 나라를 위해 대사를 벌이는 출정식은 당연히 서기가 어려 있고 함부로 잡귀가 범접할 수 없는 이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889년(진성여왕3년)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를 근거로 조세부담에 저항하는 농민 봉기를 일으키는데, 이때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는 사벌주를 지배하게 되고, 견훤은 위태로운 신라를 바로 세우고자 농암에서 무진주로 떠난다. 이때 견훤은 개(犬)바우의 정기를 받기 위해 성을 이(李)씨에서 ‘개견(犬) 자’와 동음인 ‘빛날 견(甄)’씨로 성을 바꾼 후 출정하게 된다. 이를 파자하면 <서西 + 토土 + 와瓦>로, ‘서쪽의 땅으로 가서 궁전을 크게 지어 나라를 세운다.’는 뜻을 담았으니 개바우의 힘은 참으로 신령하지 않는가. 두 번째 의문은 출정을 앞두고 반역자를 거열하거나 참수하는 이유는 신에게 바치는 산제물의 성격보다는 나라에 반역을 하면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함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시장이나 저잣거리에서 행하며, 이것을 효수 또는 효시라고 부르는 공개 사형을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처형은 기본적으로 효수하여 사체를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나무에 걸어 두고, 장례마저 치룰 수 없게 하여 시신을 매장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잔인한 능지처참을 통해 오로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일체감을 강조하고 주입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부역을 하면 3대가 흥하고, 의병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옛말은 이제 우리에게서 사라져야 한다. 그럴수록 독립운동이나 의병활동의 공훈을 더 높이 기리고 힘들게 사는 그 후손들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도와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문경에서 의병의 성지라고 불러야 될 개바우! 그곳은 이제 그저 검은 개처럼 누운 돌 하나가 아니라 구국의 신이 출현된 신성한 성지가 아니겠는가. 유럽이나 남미 여행을 가면 성모가 출현했다는 떠도는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을 방문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지 않는가. 말없이 검은 바위 하나로 누워 있는 쓸쓸한 공원에 작은 안내판 하나만이 지키고 있다는 건 이 시대를 사는 문경인의 비애가 아닐까. 당시 도암과 운강 의병장의 출정식은 하늘을 찌르는 의기찬 기상이었고 그 시발점이 바로 이 개바우니, 어쩌면 시작이 반이고 알파로 시작되는 그 출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겠는가. 농암장터 개바우 공원에 칼을 높이 든 도암과 운강과 견훤의 동상이 나란히 자리한다면 누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 정신은 영세토록 유전되는 애국이라 깨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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