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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오피니언

기고문 - 두 개의 문경을 생각하며

문경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3.06.14 10:01 수정 2023.06.14 10:01

글 - 기병중

ⓒ 문경시민신문
우리 속담에“서울 가서 김 서방네 집 찾는다.”는 말이 있다. 인구 천만이 되는 서울에서 변변한 주소 없이 김 서방네 집을 찾는다는 건 하늘에 별 따기라는 말이다. 요즘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어 예전처럼 부실한 주소로 집을 찾는 고생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렇다고 현대판 김 서방네 집 찾기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의아할 수 있겠으나 문경시에서 문경읍을 찾으려면 사전 정보 검색 없이 제대로 찾기란 쉽지 않다. 손님들이 새재를 가기 위해 열심히 문경시로 달려왔지만 알고 보니 새재는 차로 30분쯤 걸리는 문경읍으로 가야한다니 그저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 점촌시가 문경시로 되고, 문경읍은 그대로 존치하고 있어 문경에 가면 문경시와 문경읍이 두개의 지명으로 공존한다. 이는 한 지붕 아래 살면서 형과 조카를 같은 이름으로 지어놓고 부르는 것과 흡사하다. 물론 형에겐 ~님을, 조카는 그냥 이름을 부르겠지만 식구가 아닌 3자가 이름으로 구분해 낸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문경 사람들은 이런 혼란을 피하기 위해 문경시는 점촌으로, 문경읍은 문경으로 부르고 있으니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든다. 왜 혼란을 초래하면서까지 두 지역에서 문경이라는 같은 이름을 고집한다는 말인가? 문경읍에선 예로부터 문경이었으므로 그것을 지켜야하고, 문경시는 지자체 통합 개념에서 문경이라는 이름으로 아우르는 게 낫다는 점이 그 이유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고성과 경남 고성이 있고, 서울 시흥과 경기도 시흥도 있으며, 전라도 광주와 경기도 광주의 동명은 있어도 한 고장에 같은 지명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꼭 문경을 지켜야한다면 극단적으로 문경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1문경, 2문경으로라도 구분하면 좋지 않을까.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쓰는 말이다. 그 어원은 ‘잃다’로, 명사형 어미 ‘~움’과 결합되어 ‘일흠’의 ‘ㅎ’탈락을 거쳐 ‘이름’으로 변한 말이다. 일반적으로 ‘이르다(稱)’에 ‘~음’이 붙어 ‘이름’이 되었다는 생각과는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어원이‘이르다’가 아닌 ‘잃다’일까? 그건 목장의 양떼들의 귀에 다른 숫자의 번호표를 붙이는 것같이 주인이 양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같은 이름을 짓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기쁜 소식을 듣는다’는 ‘문경(聞慶)’이라는 지명은 지금부터 천년을 넘게 거슬러 고려 현종9년인 1018년 때 부터가 시작이다. 그리고 1390년(공양왕 2년)에 문경군(聞慶郡)에 감무를 두었으며 이때 가은현(加恩懸)은 상주의 속읍에서 문경의 속읍으로 조정 된다. 그 이전엔 757년(신라 경덕왕16년) ‘관산현(冠山縣)’이라 한 것을 940년(고려 태조23년) ‘문희군(聞喜郡)’으로 개칭하고, 983년(성종 2년)에는 전국에 12목을 설치하면서 문희군(聞喜郡)과 가은현(加恩縣), 호계현(虎溪縣), 산양현(山陽縣), 영순현(永順懸)이 상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결국 관산현 (757년) <문희군(940년) <문경군(1018년) 순으로 변했으니 관산현이 제일 오래 되었고, ‘문희경서(聞喜慶瑞)’라는 뜻을 담은 지명으로는 문경보다 문희가 더 오래되었다. 지방자치제의 시행으로 시 군의 명칭 때문에 몸살을 앓은 곳이 있다. 통영은 1900년 통제영 소재지에 진남군이 설치되고, 1909년 용남군으로 개칭되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 용남군과 거제군을 합해 ‘통영군’을 설치하였다. 그 후 1955년 충무공의 호를 따서 ‘충무시’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다시 현재의 ‘통영’으로 명칭을 바꾸게 된다. 이는 충무공 이순신보다 지명의 역사성을 고려한 이름으로 바꾼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성을 고려하여 이름을 바꾼 지자체는 이 뿐이 아니다. 고령군은 2015.4.2. ‘고령읍’을‘대가야읍’으로 변경했는데, 대가야의 역사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아 1,300년 만에 옛 이름으로 되돌린 것이다. 이외에도 부산에는 ‘부산진’이 있는데, 같은 이름 중복을 피하기 위해 부산에다 ‘~진’을 붙여 ‘부산진’으로 명명하였다. 동래군 서면이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부산부의 일부가 되면서 부산진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57년 구제를 실시하면서 부산진구가 되었다고 하지만, 왜 진(鎭)이 있지도 않은 곳에다 부산진이라 지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좋은 이름으로 이곳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렇게 작명했을 것으로 생각 된다. 삼천포를 흡수하여 ‘사천시’로 명명된 이곳도 지명 때문에 실제로 나이 많은 사람을 중심으로 삼천포와 사천 사이의 지역 감정이 상당히 있는 편이다. 시간이 흘러 두 지역이 화합하는 행사가 대폭으로 늘어 지역감정은 줄어들었으나, 동질성은 여전히 미묘하다. 그러나 ‘삼천포로 빠진다(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사라지며 점점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이름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더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름의 가치를 높이려면 사람들이 편하고 쉬우며 정확하게 많이 불러주어야 한다. 예술가들은 필명을 쓰고 연예인들은 예명을 쓰며 세계화시대를 맞아 기업도 LG, GS, SK, CJ, SSG 등으로 이름을 바꾼다. 지금 지구를 뒤흔드는 방탄소년단은 ‘BTS’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의 우상이 되어가고 있으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제 문경시에는 두 개의 문경이라는 이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특히 그것은 문경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꼭 바꾸어야만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찾고픈 곳 1위의 <문경새재>는 이미 브랜드 상품이 되었으니 문경읍이 <새재읍>으로 된다면 지금보다 더 좋을 것이다. ‘새재’는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좋고 역사성이 있어 누구에게나 듣기 좋고 부르기 좋으며 가치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굳이 “기쁜 소식을 듣는다”는 뜻을 담아내고 싶다면, 고령이나 통영처럼 역사성을 내세워 문경보다 더 오래된 <문희읍>도 충분히 권할 만하다. 우리가 고유하고 의미 있는 문희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문경과 문희 모두 아름다운 꽃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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