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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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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제3260부대 2대대(대대장 신동성) 장병 31명과 문창고등학교 학생회 간부 14명은 7월 24일 오전 운강이강년기념관을 방문하여 운강 이강년의병대장의 義로운 삶과 義兵精神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정신전력 집중교육 일환으로 대대장의 인솔하에 기념관을 방문한 육군 제3260부대 2대대 장병들과 방학을 맞아 지역 역사인물 탐방을 한 문창고등학교 자치회 임원들은 운강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 참배와 유물전시관을 관람하고 완장리 마을에 위치한 생가를 둘러보았다.
운강선생은 22세 때 1879년(고종 16년) 무과에 합격 종6품 선전관宣傳官으로 근무할 당시 1882년 임오군변과 1884년 갑신정변으로 나라가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학문에 매진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으로 이어지는 일제에 의한 국가 변란의 소용돌이에, 선생은 1896년 2월 23일 가은 도태장터에서 의병을 일으켜 문경을 중심으로 수안보 제천에서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싸웠으며, 그 후 1904년 러일전쟁과 1905년 을사늑약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이라는 국망의 위기에 이르자 호서창의대장에 올라 침략자 일본군에 맞서 전면전에 나섰다.
운강의병부대 전투는 1907년 5월부터 제천을 중심으로 충북과 경북북부, 강원도와 경기도를 아우르는 광범한 지역에서 전개된 대유격전과 산악전으로 일본 군경에 맞서 싸웠다.
선생은 한말 의병전쟁사에서 탁월한 지도력과 용맹심으로 일제의 조선반도 침탈에 막대한 타격과 손실을 주었으며, 1908년 7월 2일 제천 작성산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일본군에 붙잡힌 선생은 그해 10월 1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여 그의 공을 기리고 있다. 의병항쟁 13년 선생의 義로운 삶과 장렬한 구국정신은, 일제강점기 독립전쟁으로 이어져 조국 광복을 맞이하였으며 오늘날 풍요로운 대한민국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장병들을 인솔한 대대장 신동성 중령은 “우리 장병들이 지역 방위 임무를 수행하면서 문경이 낳은 대한민국 호국인물 운강이강년선생의 나라사랑 구국정신은 남은 군생활 더나아가 학업과 사회 직장생활에서도 가슴깊이 새겨야할 귀중한 시간이었다”라고 말하였다.
문창고등학교 학생회 간부 14명과 함께 운강기념관을 방문한 신순식 담당교사는 “청소년시절 지역의 역사인물에 대해 현장을 보며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라고 말하며 “대학진학을 앞두고 오늘 오후 문경새재 리더십 캠프에 참여하는 학생자치회 임원들에게 운강선생이야 말로 많은 귀감을 주는 산 역사이자 교훈으로 기억해야한다“라고 말하였다.
이어 운강이강년기념관 황용건관장은 “운강선생은 일제침략기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나에게 무엇이 利로운 길인가 보다는 나에게 무엇이 義로운 길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에 옮겼던 대표적인 분으로, 선생의 이러한 삶의 자세와 정신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시대정신으로 우리 젊은 세대가 이어받아 나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