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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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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의 세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힘보다 보이지 않는 전략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세계사는 강대국들의 흥망성쇠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시대를 읽고 때를 기다릴 줄 알았던 지도자들의 통찰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등소평(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역시 그러한 전략적 지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외교정책이다.
도광양회는 글자 그대로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자신의 능력과 의도를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실력을 축적하며 결정적인 시기를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단순히 몸을 낮추거나 겸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자존심이나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을 자제하는 전략적 인내를 말한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한 등소평은 중국이 아직 미국과 경쟁할 국력이 아니라는 현실을 누구보다 냉정하게 인식하였다. 그는 국가의 자존심보다 국민의 삶을 먼저 생각했다. 이념보다 실용을, 명분보다 성장을 선택하였다.
1979년 미국을 방문한 그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등 미국 사회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당시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지나치게 몸을 낮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등소평은 감정보다 국익을 앞세웠다. 미국의 경제력과 과학기술, 산업 경쟁력을 직접 확인한 그는 중국이 먼저 해야 할 일은 경쟁이 아니라 배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후계자들에게 "국력이 충분히 축적될 때까지는 강대국을 자극하는 언행을 삼가고 조용히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것이 바로 도광양회의 핵심 정신이다.
그 결과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중국을 거대한 생산기지이자 투자 대상으로 인식하며 막대한 자본과 첨단기술을 이전하였다.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세계 최대의 생산국으로 성장하였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세계 경제의 변방에 머물던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G2 국가로 도약하였다.
등소평은 또 하나의 유명한 말인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남겼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이다"이 말은 중국 개혁개방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이념 논쟁보다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폐쇄적인 계획경제를 과감히 개혁하고 시장경제 요소를 적극 받아들였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는 결국 중국 경제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지나치게 계산적이고 실리만 추구하는 외교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제정치에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고 꾸준히 실행했다는 점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도광양회는 국가 전략에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개인의 삶에도 깊은 교훈을 던져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 빨리 성공하려 하고, 너무 빨리 인정받으려 한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행동하고, 결국 실패를 경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늘날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화려한 성공담과 소비가 넘쳐난다. 많은 사람들은 남보다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데 투자하는 시간을 늘리는데 신경을 써야한다.
그러나 진정한 경쟁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아 올린 실력에서 나온다. 씨앗은 땅속에서 긴 시간을 견딘 뒤에야 싹을 틔우고, 대나무 역시 몇 년 동안 뿌리를 내린 후에 놀라운 속도로 자라난다. 사람의 성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예리한 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되 행동은 소걸음처럼 묵묵해야 한다. 조금씩 흙을 옮기다 보면 언젠가는 큰 산도 옮길 수 있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정신이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하였다"스스로 드러내지 않기에 더욱 빛나고,스스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기에 그 옳음이 드러나며,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에 공을 이루고, 스스로 뽐내지 않기에 그 이름이 오래 남는다" 이 구절은 도광양회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진정한 실력자는 자신을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실력이 쌓이면 세상이 먼저 알아보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강국이 되었다. 그 과정에는 개혁·개방이라는 결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도광양회라는 인내의 철학이 있었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도자의 통찰이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인생은 속도의 경쟁이 아니라 방향의 경쟁이다. 순간의 박수보다 오래 남는 가치를 선택하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이다.